최수자 권사님을 기리며
합신전국여전도회연합회 제54회기(1989년)부터 제57회기(1992년)까지 회장을 역임하셨던 동서울노회 화평교회(이광태 목사 시무) 최수자 권사님께서 지난 9월 27일 84세를 일기로 남편(박진우 장로님)과 세 자녀를 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71회기(2006년)부터 경북여전도회연합회장으로 총회 및 수련회 참석을 시작으로 이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직전회장님과 매월 실행위원회를 참석하면서 앞선 전국여전도회 회장님들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소극적인 저는 출석만 열심히 하면서 회의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한 분, 한 분 앞선 회장님들의 신앙과 연륜, 그리고 어떻게 전국여전도회장까지 오게 되었는지 등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최수자 권사님의 첫인상은 무섭고 움직이지 않는 바위 같았습니다. 그래서 실행위원회를 하면 현 임원들이 의견을 내면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채택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모든 안건의 채택은 증경회장님들의 의사로 결정되곤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임원들이 중심이 되어 일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회의에 참석 했지만 채택의 결과는 달랐습니다. 증경회장님들의 생각이 맞았고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몇 년을 거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견이 분분하거나 결정이 쉽지 않을 때는 최 권사님의 한마디가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했고 참 지혜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면 모든 회장들은 최권사님께 연락해서 지혜를 구하곤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한 지혜로운 멘토를 주셨음에 감사했습니다.
전국여전도회연합회 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주신 은혜로 그 일을 감당하지만 많은 희생이 따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연합회모임은 늘 어려웠습니다.
지금보다 초창기에는 모든 여건이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연합회를 잘 세워보시겠다고 회장직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 4년씩 맡아 일하시면서 이 모임을 여기까지 이르도록 기도하시고 헌신하셨습니다. 지연합회의 교회들을 순방하는 길에도 함께 가셔서 하루 종일 봉고차에 몸을 싣고 함께 다니시면서 방문한 교회마다 사정을 들으시고 기도하실 뿐 아니라 물질로 또 앞장서서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미스바찬양단을 만드시고 단장에 역임하시면서 물심양면으로 헌신하셔서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도 앞장서셨습니다. 찬양연습이 끝나면 증경회장님들은 도시락을 드시면서 함께 전국여전도회를 위한 기도회를 매주 또 가지셨습니다.
이런 덕분에 저희 후배들은 어려움 없이 이 직분들을 감당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부터 최권사님은 신장투석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수련회에 참석하셔서 힘이 되어 주셨고, 늘 기도 해 주셨고 저희들의 물음에 늘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임도 못하고 임원들의 임기에 대한 새로운 제안에 고민이 많으셨는데 결정되는 것도 지켜보시지 못하고 서로 만나지도 못한 아쉬움 속에 투병 하시다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별이 하나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젠 뵐 수 없구나…… 언덕 같았던 최권사님이 정말 떠나셨구나…… 정말 슬펐습니다. 이제 저도 현임원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 최권사님의 헌신과 섬김에 감사하며 그 뒤를 따라가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존경하는 그리고 전국여전도회연합회의 멘토이신 모든 증경회장님들 늘 강건하시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최수자 증경회장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가셨습니다.
전국여전도회연합회 회장 문수옥 권사
54회기, 55회기, 56회기, 57회기 동안 전국여전도회연합회를 섬겨주신 우리의 멘토이셨던 분, 전국여전도회연합회를 많이 사랑하셨던 권사님이 이제 천국으로 가셨기에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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